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 대해서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 대해서
창세기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베레쉬트(בְּרֵאשִׁ֖ית)로 되어 있다. 베레쉬트는 하나님의 성전(집)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는 내용이 특별하다. 1장은
영적인 이야기로 첫사람 아담의 심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칠일 창조가 모두 첫사람 아담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2장은 육적인 이야기로 범죄한 천사의 영이 어떻게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나타났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에덴동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부터
전개된다. 3장은 세상 속에 갇힌 인간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4-50장까지는 세상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흙 속에 갇히므로, 인간이 되었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죽었던 영이 살아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세기를 읽어보아야만 한다.
1. 첫사람 아담의 심령 속에서 칠일 창조
창세기 1장 1절.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라고 번역된 בְּרֵאשִׁ֖ית (베레쉬트)는 접두사(בְּ)가 붙어 있는 명사형으로서 영어의 in the beginning이 아니라, 하나님 집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 집의 머리되신 분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을 설명하는 내용이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이다.『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태초(Ἐν ἀρχῇ)에 라고 번역되었는데, “Ἐν(~안에) ἀρχῇ(첫째 되는 분)”이며, 이 문장은 말씀과 연계되어 있다. 즉 “엔 아르케 엔 호로고스”가 마치 한 단어인 것처럼, 설명된다. 그래서 번역을 다시 하면,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의 머리되신 분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첫째되신 분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장 2절에서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이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셔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3절에서『만물이
그로 말미암아(디 δι’)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디(δι’)는 ~통하여(through) 라는 의미다. “통하여”라는 말은 통로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통로(그리스도)는 바로
첫사람 아담이다. 그리스도와 첫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면, 먼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과 땅, 사람을 포함하여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그리스도가 스스로 사람(첫사람 아담)이 되시며, 그리스도가
첫사람 아담을 통하여, 영적의 세계인 심령 속의 하늘나라와 육적 몸을 상징하는 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이야기는 첫사람 아담의 심령 속에 만들어지는 하나님 나라(하나님 형상)와 땅(육의
몸)의 이야기이고,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물질세계인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신다. 창세기 2장은
물질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영적인 이야기가 된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프로토토코스) 이시니』프로토토코스는
첫태생을 의미한다. 로마서 9장 29절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프로토토코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골로새서 1장 16절에서,『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ὅτι ἐν αὐτῷ
ἐκτίσθη τὰ πάντα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ἐπὶ τῆς γῆς, τὰ ὁρατὰ καὶ τὰ ἀόρατα, εἴτε θρόνοι εἴτε κυριότητες
εἴτε ἀρχαὶ εἴτε ἐξουσίαι· τὰ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καὶ εἰς αὐτὸν
ἔκτισται·
한글 개역개정과 헬라어 성경은 다소 차이가 있다. 서로 대조하면서 살펴보면,
ὅτι
ἐν αὐτῷ ἐκτίσθη τὰ πάντα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이를 다시 번역하면,『그래서, 하늘과 땅 안에 있는 만물이 그 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이 말은 1장 15절의
말에 대한 결과로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니, 그 분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분이 첫사람 아담이고, 첫사람 아담을 통하여 만물이 다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도 영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을 통하여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형상)와 땅(육의
몸)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옛성전이 되고 만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탐욕이라는 죄를 가지고 들어오므로, 하나님이 그 심령 속의 성전에 계시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몸은 죄의 몸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절『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죄의 몸은 감옥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성령이 운행하신다.
창세기 1장 3-5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빛은 육의 눈으로 보는 빛이 아니다. 요한복음 1장
4-5절『그 안에 생명(조에)이 있었으니(호 게고넨
엔 아우토 조에 엔)이 생명(헤 조에)은 사람들의(톤 안드로포스) 빛(엔 토 포스)이라 빛(토
포스)이 어둠에(엔 테 스코티아) 비치되(파이네이) 어둠(헤 스코티아)이 깨닫지 못하더라(아우토
우 카텔라벤)』
특별한
빛(헤 조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엔 토 포스(ἦν τὸ φῶς)는 『그 빛으로』이다. 관사가 있으므로 특별한 빛, 특별한 사람(톤 안드로포스)을
의미한다. 특별한 사람은 성도를 의미한다. 번역을 다시 해보면
『호 로고스께서 비춰주는 그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그리스도)은
그 사람들(성도)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는데, 여기서 빛이 바로 특별한 빛(토
포스)인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므로서 그 빛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성도는 먼저 어둠에 있는 자신을 비추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빛을 비추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었다고 번역했는데,『하나님이 그 빛 사이와 어둠 사이를 구별하사』 라는 말이다. 낮은
생명인 성령의 법에 있는 자, 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 6-8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한다. 궁창은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다. 심령 속에 하늘의 생명의 말씀과 땅의 율법의 말씀이 나뉘어지듯이 마음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다. 둘째라는 말은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 9-10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천하의 물”(הַמַּ֜יִם מִתַּ֤חַת הַשָּׁמַ֨יִם֙)이라고 번역한 것은 심령 속의 하늘 나라 밑에 있는 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율법을 나타낸다. 율법이 다 모여지므로, 뭍(죄의
몸)이 드러나는 것이다. 율법을 바다라고 칭하고, 죄의 몸을 땅이라고 말한다.
창세기 1장 11-13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땅이 양식을 세가지를 낸다. 풀(데세 דֶּ֔שֶׁא), 채소(에세브 עֵ֚שֶׂב ), 나무(에츠 עֵ֣ץ)이다. 풀은 이사야 40장
7절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 말씀에 비유되는 풀이지만, 창세기
1장 11절에서 말하는 풀은 막 싹이 난 연약한 풀이다. 이 풀은 동물과 관련이 있다. 창세기 1장 30절에서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에세브 עֵ֚שֶׂב )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개역개정에는 풀이라고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는 에세브라고 되어있다. 에세브는
채소이다. 따라서 짐승도 풀 뿐만 아니라 채소인 에세브를 먹는다는 것이다. 짐승이 먹을 수 있는 에세브에는 제라( זֶ֔רַע 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즉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씨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나 모든 짐승과 모든 새가 풀을 먹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날
짐승을 보면 육식을 하는 것들이 많다. 이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전도서 3장 21절에서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개역개정)” 개역개정에서 히브리어 루아흐를 혼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영이다. 즉 사람의 영은 위로 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짐승은 문자 그대로 짐승일 수 있고, 거듭나지 못한 인생, 하늘의
생명이 없는 존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1절에서 말하는 짐승은 씨가 없는 풀(채소를 포함)을 먹는데, 이는
영적으로 약속의 생명이 없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출애굽하지 못한 애굽 백성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채소(에세
עֵ֚שֶׂב)에 대해서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에세브는 풀과 차이가
있는 것이 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곧 약속을 가진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채소는 씨를 가지고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씨는 곡식으로서 떡으로 표현된다. 가나안에서 먹는 열매는
포도주로 표현된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나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다. 결국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때 등장한다. 떡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살로, 포도주는 피로 상징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생명의 말씀과 언약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씨와 열매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씨맺는 채소와 씨맺는 나무의 차이는 열매를 맺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채소는 씨만 있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 잘려나가는 나무가 된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은 초등학문에 이르는 아이처럼, 하늘로부터
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약속의 씨에 대한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왔지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는
말이다. 단지 들어서 지식으로 아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씨맺는 나무와 씨맺는 채소를 통해서, 인간이 씨를 뿌리고
경작해서 양식을 얻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해마다 씨를 뿌려서 열매를 거둔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창세기 3장 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하나님은 매년 씨를 뿌리고 경작하면서 깨달아라는 것이다. 무엇을 깨달아라는 것인가?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나님이 좋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이 세상에 와서 씨뿌리고 열매를
거두어들이지만, 결국은 죽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게되므로 회개하여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씨뿌리는 것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발견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를 좋게 보신 것이다.
창세기 1장 13절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셋째 날은 성막으로 비유하자면
성소에 있는 떡상에 해당된다. 떡상은 생명의 양식을 나타낸다. 출애굽
사건에서는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맛나를 먹는 것을 나타낸다. 절기 상으로 처음에는 유월절, 두번째는 무교절, 세번째는 초실절이다. 셋째 날은 초실절과 관계되는 것이다. 초실절은 무교절 기간 중에
안식일 다음 날(첫날)이다.
초실절은 첫 보리 수확을 드리는 날이다.
레위기 23장 10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안식일의 첫날(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다. 초실절부터 오순절까지 오십일이 있다. 초실절로부터 오십일 후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다. 이날은 모세가
십계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날이기도 하다.
고린도전서 15장 20-23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첫열매는 앞으로 수확을 할 것이다 라는 보장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첫열매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것이
부활의 열매인 것이다. 초실절은 부활을 보증받는 날인 것이다. 창조
셋째 날 열매는 이런 의미에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유는 창세기 1장 11-1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셋째 날에 이미 부활될 것을 알려주신대로
그렇게 된 것이다. 절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다. 이
약속이 진행되는데, 성막에도 여러 모양대로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창조 시간에도 그런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여기에서 나를 믿는 자(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는
헬라어로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인데,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믿는 자라는 의미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믿는
자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를 의미한다. 함께 부활하여 심령 속에 호 로고스께서 임재한다고 믿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할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 자는 날마다 생명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은 날마다 생명의 양식을 먹는 자만이 셋째날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4-15절『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하라 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광명체들이 낮과 밤을 나뉘게 한 것이 아니라, 광명체가
비취는 것이 낮이고 비취지 않는 것이 밤이라는 말이다. 광명체가 땅에 비치는 것은 생명의 빛이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것을 의미한다.
징조(오트)는 휏불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빛을 통해서 하나님의 싸인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계절(모에드)은
회중, 성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레오토트(오트)
우러모우아딤(모에드)”는 한 문장으로서, 회중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싸인을 의미한다. 날(욤)과
해(샤나)에서, “울러야밈(욤)
웨씨남(샤나)”도 한 문장으로서, “하루하루 나아가 전 생애에”라는 의미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빛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깨닫고 살아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6-17절『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큰 광명체는 성부 하나님이시고, 작은 광명체는 그리스도, 별은 성도를 상징한다. 작은 광명체이신 그리스도는 어둠에 있는 자에게
성부의 빛을 비춰서 깨닫게 해주시고, 성도 역시 성부 하나님의 빛을 영적으로 어둠에 있는 자에게 비추는
것이다. 성부와 그리스도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어둠에서 역사한다.
창세기 1장 18-19절『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녀기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구별하신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을 구별시고 넷째 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구별하게 하시니라. 빛과 어둠을 계속 낮과 밤이라는 테마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낮은 빛에 있는 존재, 밤은 어둠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 형상 안에 있는 존재들은 빛이고, 죄의 몸에 있는 존재들은
어두운 존재라는 것이다.
첫째 날 오르가 넷째 날
마오르가 되고 이 마오르가 등잔대로 표현되므로 성막에서 나타나고, 신약에서는 너희는 빛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절기로 말하자면 셋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므로 초실절이지만, 넷째 날은 오순절이 된다. 오순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날이다. 신약에서는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것이다.
창세기1장 20-21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물들은 율법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율법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생명으로 번성하게 한다. 율법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늘의 궁창에 있는 새는 율법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심령 속의 하늘 나라를 향해서
날아가는 새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생명으로 번성하게 되는 것을
좋게 보신다.
창세기 1장 22-23절『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영생이 된다. 생육(파라
פְּר֣וּ )하라는 열매(예수 그리스도)를 맺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6절에서『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 하신 말씀이다. 아브라함에게 나오는 열매는 이삭이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곧 부활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하나님 품 안에서 살아있다는 말이다. 이사야
12장 1절에서『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파라) 것이요』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열매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말씀이신 호로고스)를 말씀으로 뿌려서 열매를 맺는 것이 생육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4-25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가축은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땅의 짐승과 뱀
등 땅에 기는 것과 가축을 비교하는 이유는 정한 짐승(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자)과 부정한 짐승(죄의 몸 안에 있는 자)을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내라 하시고”(토우체 תֹּוצֵ֨א:기본형 야짜)나오다, 앞으로
나가다, 이끌어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 동사는 사역형(V-Hiphil)이다. 사역은 누구에게 시키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인도하다”라는 단어가 야짜 이다. 신명기 4장 37절에서『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여기서도 인도하다라는 단어가 야짜 이다. 야짜는 구원과 관계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땅에게 사역을 시키는데, 영적으로
살아있는 생물을 종류대로 내라는 것이다. 생물은 네피쉬 하이(נֶ֤פֶשׁ חַיָּה֙ )이다. 살아있는 생명체(혼)를
의미한다. 네페쉬는 호흡하다, 입김을 불어넣다는 의미다. 하이는 살다, 살아있는 의미다. 네페쉬
하이는 물고기에도 사용되고 땅의 동물들에게도 사용되고 사람에게도 사용되었다.
짐승에 대해서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기는 것은 파충류(주로 뱀) 등 기어다니는 것을 표현한다. 이는 죄의 몸과 하나가 되는 자(부정한 자)를 의미한다. 육축도 종류 대로 만들어졌다. 굽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되새김질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 굽이 있고 되새김질 하는 육축은 정한 동물, 그렇지
못한 동물은 부정한 것이라고 한다. 되새김질은 돌이켜보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깨달아라는 의미를 갖는다. 깨닫고 돌이키는
자는 범죄하여 하나님 나라로부터 이 땅으로 이주한 것(나그네)을
깨닫는 자가 되는 것이다. 땅의 짐승(베헤마 בְּהֵמָ֥ה)으로 표현된 것은 땅의 가축이다. 가축은 대체로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들이다.
넷째날은 첫째 날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섯째 날은 둘째 날의 사역이 이루어지며, 여섯째 날은 셋째 날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셋째 날은 절기상으로는 초실절, 성막으로 보면 떡상에 해당하며 인물로는
아브라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여섯째 날은 절기상 속죄일, 인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여섯째 날에 동물을 만들고 인간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첫째 날 하늘의 뜻이 여섯째 날에 땅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 단절된 자들은 모두 죄인이 되는 것이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네피쉬하이들은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네파쉬하이들은 하나님과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네피쉬하이이고, 동물은 하나님과 교감이 없는 네파쉬하이가 되는 것이다.
1장
25절에서 땅의 짐승(베헤마)이라고 표현된 것은 땅의 가축이다. 만드시니 라고 번역된 아사(ַיַּ֣עַשׂ)는 능동동사(V-Qal)로서 주어는 엘로힘이다. 24절은 사역동사로서 땅으로 하여금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인데, 25절은 내용은 같을지라도 주체가 하나님이 직접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류대로 만드셨다. 24절에서는 땅을 통해서 일을 하시지만, 사실은 직접 행하시는 것과 같은 의미다.
창세기 1장 26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형상을
따라” 이 말은 베찰메누(בְּצַלְמֵ֖נוּ ּ)로 표현되었다. 첼렘이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찰렘에 접두어 베(בְּ)가 붙어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베레시트와 같은 개념이다. 베는 하나님의 집(장소)이라는 의미다. 영어의 in에
해당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양대로에서 모양(키드메테누 כִּדְמוּתֵ֑נוּ )은 키와 드메테누의 합성이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키(כִּ)는 영어로 likeness로 번역되었다. ~와 유사하게, 닮게 라는 것이다. 그러나 닮는다는 것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속성이
같다는 것이다. 몸의 외형적 형태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같다는 말이다. 원본과 사본이 같다는 표현이다. 같다는 말은 동일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삼위일체의 그리스도가
바로 인자이신 첫사람 아담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성부와 그리스도,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갖는다.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람은 곧 첫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났고, 마지막 아담은 죄의 몸이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영의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분은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가 될 것이다. 천사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천사를 창조하실 때 천사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범죄한 천사의 경우 하나님이 세상의 물질세계에 가둠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말은 세상에 던져진
자들이 하나님께 대적하여 이세상에 온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말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들이었는데, 육의 몸에 갇힘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으나,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는데,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하므로 형상이 사라졌으나,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교회에서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우리의
형상』이라는 것은『하나님의 영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역사하심에 따라『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는『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본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모양이라는 것은 이미 있는 모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의 식양대로 성막을 짓게 하셨다. 모양은
식양을 말한다. 하나님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예수가 되는 것이 식양이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신약에 와서 육체로 오신 예수라는 것이다. 『이런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모양이 된 것같이, 인간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흙에
넣어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살아있는 생명체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그리스도(첫 사람)를 따라 흙으로 들어갔으며, 다시 그리스도(마지막 사람)를 따라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20장 4절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하나님의 형상은 이미 사람을 통해서 만들어졌는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해서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형상은 첫 사람인 것이다. 즉
영이 육의 몸에 들어가서 나타난 모양이다. 하나님이 형상을 만들어 주셨는데, 인간들이 형상을 만든다고 하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이유다. 인간들은
이 우상을 하나님처럼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첫 사람 인간에게 형상이 만들어졌으며,『우리의 형상대로』라는 말씀 속에 첫 사람에게는 마지막 사람이 오실 것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살아있는 생명체에 영을 부어
넣어셔서, 하나님의 형상(첫사람)을 만드시고, 모든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첫 사람의 씨를
통해서 만들어진 육의 모양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게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9-40절에서『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모든
생명은 한 알의 씨가 죽으므로, 다음 세대로 재생산되어 간다. 그러나
인간은 영이 있으므로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생명체)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인간은 영이 있으므로 생명체에 들어가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가 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을 입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첫사람 아담)가 그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서 영적으로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7-28절『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먼저 사람(첫사람)을 창조하시고, 다음에
영적인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남자와 여자는 영적인 의미이다. 육적으로 남자와 여자라는 말은 창세기 2장 22-23절에서 말하는 남자와 여자를 의미한다.
첫사람은 심령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하늘과
죄의 몸이 있는 땅으로” 지어졌다. 다음에 영적인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는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그리스도가 없는 자를 상징한다. 고린도전서 11장
7절에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의미한다. 원래는 하나였는데, 분리된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사람(그리스도)을 창조하셨는데, 천사의 영이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를 시도한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로 분리된다. 이 말은 창세기
2장 21-22절에서 아담으로부터 여자를 취하게 된다. 이것을 다시 2장 24절에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라고 말한다. 원래 하나였는데, 분리되었으나 다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첫사람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만들자 라는 것으로서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성부)이 그리스도(성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남자는 그리스도,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맏아들은
첫아들과 다른 아들도 다 같은 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지어진 첫사람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첫 열매라는 말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되고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에서 “땅을 정복하라”로 발전하게 된다. 생육하는 것은 열매(예수 그리스도)를
맺는 것이고, 번성하라(라다)는 것이다. 열매가 많아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증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충만하다(마레)는 것은
복음을 말하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9-31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세가지 양식이 등장한다. 풀, 씨가진 채소, 씨가진 열매맺는 나무이다. 사람에게 주는 양식은 채소와 열매맺는 나무이고, 짐승에게는 풀을
주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동물들은 창조 당시 풀을 먹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어 먹을 것이 줄어들므로 서로 잡아 먹는 약육강식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성경 귀절이 있다. 이사야 65장 25절에서『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이사야의 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이
초식에서 육식으로 바뀌었다는 말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것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영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존재들을 동물로 표현되었다. 이 동물들이 풀을
먹으며 되새김질 하며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존재인데, 허무하게 살아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연결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존재 즉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씨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씨는 약속이며,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여인의 후손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동물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이런 언약의 실현인 것이다.
음식은 르아크라(오크라 לְאָכְלָֽה)이다. 아칼(삼키다)에서 유래되었다. 음식은
말씀에 대한 것이다. 신명기 8장 3절에서『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풀과 채소 나무에 대해서 창세기 1장 11절에서 동일한 말씀이 등장한다. 땅이 양식을 세가지를 낸다. 풀(데세 דֶּ֔שֶׁא), 채소(에세브 עֵ֚שֶׂב ), 나무(에츠 עֵ֣ץ)이다. 풀은 막 싹이 난 연약한 풀이다. 이 풀은 동물과 관련이 있다. 창세기 1장 30절에서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에세브 עֵ֚שֶׂב )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개역개정에는 풀이라고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데세 가 아니라 에세브라고 되어있다.
데세는 짐승들만 먹는 연한 풀이다. 에세브는 채소이다. 따라서
짐승도 풀 뿐만 아니라 채소인 에세브를 먹는다는 것이다. 짐승이 먹을 수 있는 에세브에는 제라( זֶ֔רַע 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즉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씨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풀 대신에 씨없는 채소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서『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양식에 대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아이들과 같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 단단한 음식과 젖을 먹는 자로 비유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 언약의 씨가 없는 존재를 동물로 표현했으며, 사람
중에서도 영적으로 열매를 맺는 존재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채소와 나무로 나뉘게
된다. 나무가 되는 사람에게는 많은 새들이 깃들게 된다. 제라( זֶ֔רַע )는 씨와 자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문법적으로 단수를 사용한다. 이스라엘 에게는 후손의 궁극적인 것은
메시야이다.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씨의 약속을 알고 있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토
스페르마)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헬라어 토 스페르마티는 그 씨(약속의)를 의미한다. 씨는 약속의 씨로서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하는 여인의 후손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자손은 씨로부터 세상에 태어난 모든 영적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그래서 씨는 그리스도이시고, 자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번역자들이 씨를 자손으로 번역하므로서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번역하면,『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약속은 씨인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씨들(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씨와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약속의 씨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씨는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의 자손들이다. 육적으로는 이삭 야곱 등등, 그러나 영적으로는 믿음의 백성들을 의미한다.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언약을
했는데, 그 언약말고, 다른 씨와도 언약을 했다는 것이다.
육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씨와 약속의 씨는 다른 차원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씨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며, 약속의 씨는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하는 씨인 것이다. 로마서 9장 7절에서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스페르마:씨의 약속)라 불리리라 하셨으니』이삭은 약속을 가진 자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씨맺는 채소와 열매맺는 나무를 주셨고, 땅의
생물에게는 씨없는 채소를 주셨다. 씨는 계속해서 대를 이어서 전하고 생육하고 번성한다. 이 땅의 생물들은 생육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야 한다.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불살라질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모든 영들이 이 땅에 오고 나면, 이 세상은 끝난다는 것이다. 로마서 11장 36절에서『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만물이 첫사람으로부터 나오고, 마지막
아담으로 말미암아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만물이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집을 떠난 탕자가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는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안식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왜 이
세상에 살게 되었으며, 육체 속에 있는 영의 상태가 어떤 상태로 되었는가를 깨닫고, 영을 살리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안식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창세기 2장 1-3절『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장 1-3절의
내용은 1장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와이쿨루(이루니라) 하사마임(하늘) 워하아렛츠(땅과) 워칼(만) 차밤(물)](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צְבָאָֽם) 개역개정의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과 차이가 있다. 차밤(기본형은
차바)은 군대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 모든 군대가 다 이루어지니라 라고 번역했어야 했다. 영적으로 심령 속에서 하늘의 군대(하나님의
형상)와 땅의 군대(육의 몸)가 배치가 된 것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는 말은『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다 이루다』라는 말은『완성하다, 마치다』 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 3절에서『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안식은 하나님이 심령 속에 죽어있는 영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약속의 씨를 두신 것이다. 씨를 통해서 깨닫고 하나님 나라로 복귀할 때, 그 또한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버지가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사는
동안(육일동안) 세상의 일을 하다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 과일을 찾아야만 하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흑암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시어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안식하는
것이다. 인생들은 끊임없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 밭을 갈아서 영생하는 열매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안식)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육일동안 일을 하다가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약속의 날이
육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한 개인은 육체적 죽음으로 그 기한이 종료되지만, 인생들 전체적으로 볼 때 육일이 끝나는 기간이다. 육일이 끝나는
날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한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기한이 종료되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이 하실 일이 끝난 것이다. 육일 동안 세상 사람의 일과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일이 다 종료가 된 것이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하늘과 땅의 군대를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자가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이 오는 것이다.
안식이 왔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경작해서 약속의 씨를 찾아가는 일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미 오신 약속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영생의 열매를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선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 믿는 것이다.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는 것과 아울러서 그 죽으신 예수가 바로 나라는 것을 받아드릴 때
믿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죽은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에게는 로마서 8장 3-6절이 적용된다.『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이 땅에 온 존재들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인간들이 받을 심판을 율법에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따라 죽은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2.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에덴동산에 일어난 일과 인간의 모습
창세기 2장 4절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바라)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톨레도트)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아사) 날에』
אֵ֣לֶּה תֹולְדֹ֧ות הַשָּׁמַ֛יִם וְהָאָ֖רֶץ בְּהִבָּֽרְאָ֑ם בְּיֹ֗ום עֲשֹׂ֛ות יְהוָ֥ה אֱלֹהִ֖ים אֶ֥רֶץ וְשָׁמָֽיִם׃
바라와 아사가 등장한다. 아사는 물질세계를 창조한 것이고, 바라는 영적인 이야기로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 나라와
육적 몸인 땅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력이라고 번역한 토레도트(תֹולְדֹ֧ות)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앞으로 예정되는 역사인 것이다.
창세기 2장 4절은 사실상 두 문장으로 되어 있다. ~내력이니<라는 문장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을 만드시던 날에 라는 문장은 서로 다른 문장인데, 장과 절을 만들 때 하나로 묶이는 바람에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준다. 그래서
2장 4절 뒷부분(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아사) 날에)과 5절은 이어지게
된다.
톨레도트(영적인 내력)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렇게 이끌어 나가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창세기에는
토레도트가 여러번 등장한다. 즉 영적인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창세기
5장 1절에서 “이것은 아담의 계보(톨레도트)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6장 9절에서도 “이것이 노아의 족보(톨레도트)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10장
1절에서도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세기 2장 5절『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경작하다(아바드)의
의미는 요한복음 6장 27-29절에서 표현된다.『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일하는 것(아바드)이 경작하는 일이다. 경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영생을 위해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이 씨 맺는 과목과 채소를 주셨다. 초목도
없고, 채소도 없다 라는 말은 들이나 밭에 씨가 없다는 것이다. 경작할
사람이 없다는 말은 경작할 사람이 오는 것을 전제로 말하고 있다.『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안개는
욥기 38장에서 구름으로 번역되었다. 여기에서 안개는 땅의
물(강)을 상징한다. 온
지면의 지면은 땅을 말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용하신 흙이다.
즉 땅이 물에 젖어있는 상태를『아다마』라고 한다. 창세기
2장 10절에서『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사람이 땅을 경작하는데,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다. 흙이 아다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수용원문(TR
Text)에는 흙(아다마)의 먼지(아파르)를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흙(먼지)을 빚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사람의 몸은 거의 대부분 물로 구성되어 있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참생명이 없는 죽은 자라는 것이다. 흙(아다마)에서 물이
제거되면, 먼지(아파르)가
되는 것이다.
땅은 에레쯔, 흙은
아다마 라고 하는데, 아담(인간)이 되기 전에 먼지(아파르)가
물과 합하여져서 흙(아다마)가 되었고, 아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물)이 먼지같은 것에 들어가므로서
인간의 형체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물)이 없는 인간은 형체조차 없는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땅에 물이
없으면, 더 이상 땅이 아니다. 땅은 항상 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땅에 물이 없으면 생명이 자랄 수 없다. 모든 근원이
하나님 말씀이므로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참 생명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이 없으므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6절『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영어 성경에 안개(mist) 라고 번역되었지만, TR원문(스테파누스 성경)의
단어가 강이 범람했을 때, 홍수라는 말로『에두』라는 말을 사용했다. 즉
안개 뿐만 아니라 샘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강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온 지면을 적실 정도면 강이나 샘으로 번역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강이나 샘이 흘러 나와 땅을 적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2장 10절에서『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로 연결된다.
지면(face of the
ground)에서 물을 적시므로『아다마』가 되었다. 지면(땅)에서 물이 적셔진 흙(아다마)이라는
것이다. 아파르는 먼지, 재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먼지에 물이 적셔지면 먼지가 흙이 되는 것이다.『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그런데, 영어성경에는
하나님이 먼지로 사람을 빚었다『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먼지가 흙으로 변하려면 물이 있어야만 한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래서 먼지(아파르)가
물과 만나서 아다마가 되고 하나님이 아다마를 빚어서 아담(흙의 형체)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친 것이다. 창세기 2장 1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사람은 아담이라고 불리웠고, 그 외 동물들도 각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사람 아담은 하늘의 범죄한 영들에게 죄의
몸을 주기 위해 태어난 자였으며, 제사장 역할을 한다. 제사장은
성소에서 죄인들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자들이었다. 마지막 아담 역시 대제사장으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아담(ֽאָדָ֗ם)은 담(피)를 의미하며, 붉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피를 흘리는 곳은 성전이었다.
흙으로 빚는 것은 영을 흙속에 가두는 개념이다. 그래서 재앙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흙에 가두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이 야차르가 헬라어에서는 플레게이다. 요한계시록 16장 21절에서『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플레게)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아사는 안식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서 범죄한 자들의 영이 흙속에 들어가 인간이 되었지만, 그
인간 속에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라고 했다. 우리 인간 속에는 첫사람 아담의 흔적이 있으며, 이 흔적을 통해서
마지막 아담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먼저 바라가 있고,
야차르한 후에 아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성전이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그런데, 영어성경에는 하나님이 먼지로 사람을 빚었다『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먼지가 흙으로 변하려면 물이 있어야만 한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래서 먼지(아파르)가
물과 만나서 아다마가 되고 하나님이 아다마를 빚어서 아담(흙의 형체)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친 것이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생령은 영이 아니라 혼의 생명체를 말한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혼의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체에
넣으신 영은 흙 속에 갇히므로서 영이 죽어버리고 혼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혼은 옷과 같은 것으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옷(혼)을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육체가 죽으면 옷을 벗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옛사람이 혼이다. 이 혼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구원받는다. 새 혼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즉 새생명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생명은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이며, 그리스도의 옷이 되는 것이다. 혼은
다른 말로 지체라고도 표현되며,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는 육의 몸과 영의 몸으로 구분한다.『육의 몸(프쉬키콘)으로 심고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프쉬키콘)이 있은즉 또 영의 몸(소마 프뉴마티콘)도 있느니라』
15장 45절『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프쉬겐 조산)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프뉴마)이 되었나니』프쉬겐 조산은 살아있는 혼이다. 프뉴마는 영이다. 첫사람 아담은 육체에 영이 갇히므로 영은 죽고, 혼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도바울은 육의 사람을 프슈케, 영의 사람을 프뉴마로 표현했다. 15장 46절에서『그러나 먼저는 신령(프뉴마티콘)한 사람이 아니요 육(프쉬케)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프뉴마티콘) 사람이니라』 신령한이
아니라 영적인 이라는 의미다. 프쉬케는 혼이다.
전도서 3장 18-21절에서『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the spirit of the beast that
goeth downward to the earth?(kjv)
혼은 영어 성경에서는 영으로 되어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를 동일하게 창조하셨다는 말씀이다. 솔로몬이 말하는 내용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과정은 같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동물에게 영을 넣어주시되, 각각 영광이 다른 영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8-40절에서『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영은 다 죽어버리고 혼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었으므로 영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약속의 씨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동물들은 약속의 씨가 없으므로, 다음세대로 씨를 전해줄 뿐이다. 그러나 천년왕국 때는 아이와 사자가 함께 지낼 때가 온다고 말한다.
창세기
2장 8절『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에덴』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에덴동산은 에덴과 동산이
결합된 단어다. 동산은 땅의 일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즉
땅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8절에서『와잍타(창설하시고) 야훼 엘로힘 간(동산을) 베에덴(에덴에) 미케뎀(동방의)』와이타는 심다 라는 의미다. 간을 개역개정에서는 동산이라고 번역했지만
정원이라는 개념이다. 기본 어근(스트롱 코드 1588)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
방어하다 라고 되어있다. 에덴 안의 뜰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막을 통해서 의미를 알 수 있다. 에덴은 기본어근이 기쁨, 우아한 즐거움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으며 주색에 빠져 살다라는 의미도 있다.
에덴동산은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방이라는 단어는 미케뎀(מִקֶּ֑דֶם)이다. 미(מִ)는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으로부터
라는 전치사 역할도 한다. 여기는 전치사이다. 즉 동방으로부터
라는 번역이 된다. 개역개정에는 동방의 에덴이라고 번역했는데, 창세기
4장 16절에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와 상충된다. 가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쫒겨나고, 2장
8절은 동쪽의 에덴이라고 표현하므로 둘의 관계는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에덴은 동쪽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에덴이라는 것이다. 에덴은
서쪽에 있는 것이다. 놋은 방랑하다 유리하다 라는 의미로서 동쪽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동쪽은 구원이 필요한 곳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성막의 그림이다. 성막의 문도 동쪽으로 나와있다. 성막의 서쪽에는 지성소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에덴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며 희락이 있는 영적인 개념인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니라(와야셈:기본형은 슘)』슘은 ~에
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임명한다는 것이다. 사무엘하 17장
25절에서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지휘관으로 삼으니라(슘)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그래서 아담은 성막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한글 개역개정으로 보면, 하나님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만든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다르다.
וַיַּצְמַ֞ח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כָּל־עֵ֛ץ נֶחְמָ֥ד לְמַרְאֶ֖ה וְטֹ֣וב לְמַאֲכָ֑ל וְעֵ֤ץ הַֽחַיִּים֙ בְּתֹ֣וךְ הַגָּ֔ן וְעֵ֕ץ הַדַּ֖עַת טֹ֥וב וָרָֽע׃
와야츠메흐(나게하시니) 야훼 엘로힘 민(~에서) 하아다마
콜(모든) 에츠(나무가) 네흐마드(아름답고) 르마르에(보기에) 웨토브(좋은) 레마아콜(먹기에) 웨에츠(나무와) 하하이욤(생명) 베토크(가운데는) 학간(동산) 웨에츠(나무도 있더라) 하다아트(알게하는) 토브(선) 와라(악을)
창세기 2장 9절을
다시 번역하면,『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모든 나무를
자라게 하시니, 그것은 정원가운데, 기쁘고, 양식을 위해 보기에 가치있고, 생명이 있는 나무이다. 그리고 선악 지식나무.』
하나님이 지으신 나무는 세가지 종류인 것이다.
기쁨이 있는 나무, 양식을 위해 보기에 가치있는 나무, 생명이
있는 나무이다.
그런데,『선악지식 나무』가 갑자기
끼어든다. 선악지식 나무는 자기의 의를 나타낸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나무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나무를 만드시지 않는다. 선악지식 나무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3장 24-25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라지가 바로 선악지식 나무에 해당된다.
마태복음 13장 24-25절에서『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좋은 씨는 생명나무가
된다. 그러나 가라지는 선악지식 나무이다. 누가 가라지를
심었는가? 원수가 심었다는데, 원수는 누구인가? 바로 죄라는 놈이다.
교회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는 계명을 어기기 전에 계명을 어기도록 하는 탐욕이 있다. 그것이 죄이다. 그래서 우리는 탐욕이라는 죄의 정체를 밝혀야만 하는
것이다.
현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과 날마다 접한다. 인공지능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합하여 놓은 빅데이터를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해결사가 되는
것이다. 이 A.I.는 점차 발전하고, 스스로 결정하는데 까지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것이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며, 인간은 그것을 의지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뇌에 심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려고 할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으므로, 그래서 종국적으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악이 된다. 악은
해를 끼치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죄가 된다. 이것은
가상 시나리오이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을 컴퓨터처럼, 로봇처럼
기계화시키고, 형이상학적 인간의 가치를 멸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하나님 나라에 적용시키면, 악한 천사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지식과 생각을 결합하여 A.I.(Angel Intelligence)를 만든
것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이 A.I.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처럼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죄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죄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존재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도들은 “죄는 인공지능이다” 라는 가정법으로 생각해서 접근해보기를 원한다.
죄(A.I.)는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이
A.I.는 악한 천사들의 A.I.(Angel
Intelligence)이다.
로마서 5장 12절『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성경은 죄(A.I.)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한다.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사망이 왕노릇한다고
했다. 사망 역시 관념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사망이 왕노릇한다”는 말은 A.I.가 인간의 주인인 것처럼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선악지식 나무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악한 천사들이
만든 A.I.이다. 악한 천사의 영이 흙이라는 육체 속에
들어와 인간이 될 때, 이 A.I도 함께 육체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을 마태복음에서 가라지의 비유로 등장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10-14절『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창설하셨다』라는 말은『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kjv)로서『심었다』라는 것이다.『정원을
심었다』라는 것이다. 정원에는 나무가 있다.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에덴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심은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계획을 창세 전에 하셨는데, 구원계획이
바로 정원(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을 심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기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신다.
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인데,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상징한다. 율법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생명을 취하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자신이 죄악된 자라는 것을
깨닫고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강은 히브리어로『나하르』라고 하는데,『흐르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강(물:하나님 말씀)이 에덴(하나님 나라)에서
흘러, 동산(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을 적시고』, 동산(정원)을 적신 물(말씀)은 궁창
아래의 물(율법)이다. 원래
물은 하나였는데, 궁창을 만드시므로 궁창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뉜 것이다. 그래서 궁창 아래 물은 원래 하나님 나라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궁창 아래 물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말씀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과 같은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궁창 아래 물은 그런 의도의 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물이다. 그래서 동산을 적신 물은 율법이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동산을 적셨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율법)이 이 땅 가운데 하나님나라(백성: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다.『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거기는 에덴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온 말씀(율법)이 동산(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을 적시고, 네 근원이 되었는데, 네 근원은 세상을 나타낸다. 넷이라는 말은 사방이며, 세상 전체(이방인)를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7장
1절에서『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흩어져 나가, 그들에게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자기가 선을 행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이
네 곳으로 흘러가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의해
적셔지게 된다. 인간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자기가 선을 이루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생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찾고 그리고 자기 식으로 영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강을 통해서 참 진리의 말씀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복음이 이방 땅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윌라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구스(애굽), 앗스르, 유브라데는 이방을 의미한다.
네 근원에서 근원은 머리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근원이시며, 이스라엘로부터
이방인에게 까지 생명의 강이 흘러간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7장
37-38절에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생수의 강은 성령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직 첫째 강에만 하나님의 선한
말씀도 있으며, 율법도 있으며, 교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비손은 쏟아진 물이다. 비손 강은 하윌라 땅에 흘렀다. 하윌라는 이스라엘 내의 한 지명이겠지만, 모래 땅(사막)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금이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 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25장 10-22절에서 법궤(증거궤)를 만드는데 금이 사용되었다. 증거궤는 율법의 돌판이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도『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난한 자이므로 금(하나님 말씀)을
사라는 것이다. 불로 연단한 금은 성령에 의해서 밝히 드러나고 깨달아지는 말씀이다. 값없이 사라는 것이다.『순금』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며, 그 말씀이 사막에 있다는 것이다.
『베델리엄』은 진주를 말한다.
민수기 11장 7절에서『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진주는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는 보석이다. 마태복음
13장 45-46절에서『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교회를 샀다는 것이다. 즉 진주는 그
교회를 말한다.
『돌』(에벤)은 개역개정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서『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흰돌은 받는 자만 그 이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호마노』(쇼함)는 제사장 옷에 달았던 보석이다. 출애굽기 28장 9-10절에서『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호마노에 야곱의 열두 아들(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호마노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율법을 의미한다.
하윌라(모래) 땅에 순금(하나님 선한 말씀)도
있고, 돌(새이름)도
있고,베델리엄(교회)도
있고, 호마노(율법)도
있다는 것이다. 그 땅에 비손강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곳은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 진리의 말씀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었다.
둘째부터 넷째 강까지는 첫째와 같은 설명이 없다.『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온 세상 사람들(이방인)은 강이 흘러가듯이 온 세상에 퍼져서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왕국을 건설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생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물질세계에 왔으나 하나님을 잊어버리므로 결국 자기의 세계 건설에 치중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하나님의 말씀(율법)이
동산을 적시고 갈라져서 네강으로 흘러나왔듯이, 온 세상의 사람들도 율법의 말씀대로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해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둘째에서 넷째 강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오직
첫째 강에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영생의 길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는 모든 인간들에게 말해주신다. 너희들은 에덴에서 산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세상에서도
선악을 알게하는 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영생(그리스도)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동산(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서 열매 맺으라는 것이다. 네 강의 근원은 그리스도인 것이다. 동산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이
될 것이다.
2장 15절『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에덴 동산에 두어』둔다는 말은임명한다는 것이다. 성소(에덴동산)의 제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 밖에 있는 아담을 에덴동산 안으로 이끌었다. 밖은 세상이고 안은 하나님 나라(성소)를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담 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마지막
아담을 통하여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주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자는 하와다. 그리고 그 둘을 통해서 태어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다. 동산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떠난 영들을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돌아갈 수 있는 자들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시작된 언약의 백성들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그리고 그에 따라 창세기 5장의 계보를 따라 난 자들이 될 것이다.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언약의 자손들이 포함된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이면서 이 땅인 동산에서의 사건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이 범죄하고 그의 미혹에 따라 영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이 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땅에서는 하와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미혹을 따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아담도 먹으므로, 그 둘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쫒겨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이 땅의
사건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사건의 동질성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순차적으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하나님이 인간이 되게 하시고 에덴동산에 이끌어주시고, 다시 에덴동산 밖으로 쫒아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이 말의 의미는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첫사람 아담 안에서 세상에 태어나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 전에 이미 작정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한 영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흙에 들어간 영들은 인간으로 태어나자 말자 다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땅을 경작하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둣이 깨달아라는 것이다.
경작한다는 말은 ‘일하다’(어떤 개념에서든);함축적으로 ‘봉사하다’, ‘경작하다’, (사역동사로)‘예속시키다’
등등 이다, 노예의 신분이 되다, 노예, 노예가 되다, 종살이, 강요하다, 노동하다, 보살피다, 단행하다, 농부, 지키다, 노동하다(노동자), 일으키다, 섬기게
하다, 하인(이 되다), 섬기다, 경작자, 점하다【난외주에서】, 맡기다, 예배자의 의미가 있다.
에덴의 동산은 하나님 나라이면서 이 땅을 의미한다. 이
땅으로 보면, 동산은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난 아담은 첫사람이면서 마지막 아담이 되며, 가나안에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어린양이
된다.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이 경작하고 지키는 일(영생을
얻기 위해 예배하는 일)을 율법을 통해서 이루라고 하셨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도저히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신 약속의
씨(영생)를 발견하고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의 동산을 창설하셔서 인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때의 동산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이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 안이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영의 아버지였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대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도록 허용하시고 돈도 주어서 네 마음대로 해봐라 라고 보내주었다.
탕자는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가 되어, 회개하여
죽은 자같이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반갑게 맞이하여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에서 바로 그 탕자라는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것을 회개하고,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죄를 덮어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창세기 2장 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정원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의 지식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는 말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를 표현해 놓은 것이다.
유다서 1장 6절『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베드로후서 2장 4절『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범죄한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탐욕을 가지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신 것이다. 2장 17절에서 범죄한 천사가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열매는 죄라는 열매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를 세상의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개
했다. 하나님은 악한 천사를 인간이 되게 하여 가두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7절의『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혼:soul)이 되니라』라고 말을 한다.
비록 그들이 땅에 갇혀 사람이 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셔서 그들을 구원하기로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다.
죄는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로마서 5장 12절『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은 첫사람 아담이다.『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고 번역되었는데,『한 사람을 통하여』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통로인 것이다. 즉 통로라는 말은 죄가 통과하는 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죄의 몸이 죄의 통로이다. 로마서 6장 6절에 나오는 『죄의 몸』은 헬라어로『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스』(τὸ σῶμα τῆς ἁμαρτίας)라고 하는데, 죄덩어리의 몸이 아니라, 쓰레기를
담는 통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죄를 물건으로 생각한다면, 죄를
담는 그릇 같은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람은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일에 대해서, 창세기 2장 21-22절에서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죽고)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남자)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첫사람 아담은 대속의 그리스도로서, 죄의 몸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죽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죄의 몸을 대대로
전해지고 범죄한 영과 죄가 죄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첫사람 아담과 남자 아담은 다른 존재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남자와 여자에게 만들어 준 그리스도, 남자(아담)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를 의미한다. 여자도 범죄한 천사를
상징한다.
첫사람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것은 하와가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을 의미한다. 죄로 인한 하나님과 분리이다. 첫사람 아담이 잠든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예표이다.
남자와 여자는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죄의 몸을 이어받아 태어났고, 범죄한 천사가 지은 죄가 하늘로 부터 그들의 죄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한 천사의 영이 죄의 몸 속으로 들어오므로 후대의 사람(남자와 여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천사의 영은 죄의 몸에 들어오므로 영적으로 죽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죄와 죄의
몸(육적 몸)이 있다. 죄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고, 죄는 하늘 나라에서 범죄한 영과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율법주의 나무로 자기가 주체가 되는 나무다. 사람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나무인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율법)의
열매를 먹는다” 말에서, 율법의 열매는 죄다. 죄의 결과는 (희생제물의) 죽음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인데, 율법의 열매를 먹는 것은 죄를 먹는 것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 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두번 죽음을 상징한다. 물세례와 불세례를 표현한 것이다.
창세기 2장 18-20절『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르바도(기본형:바드)는 혼자라는 번역으로 되어있지만 나뭇가지, 운반용 장대 막대기다. 성막을 운반할 때 고리에 연결하는 막대라는
것이다. 『로 토브 헤요트(하야)
하아담 르바도(바드)』부분으로 분리되어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신명기 8장 3절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바드)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바드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즉 아담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라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와는 그리스도를 떠난 범죄한 영들을 상장한다.
서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불완전한 것이다.
에스겔 17장 6절에서『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가지가 바드이다. 포도나무의 가지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가지는 나무에서 분리하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케네게드에서 네게드는 정면의 반대쪽 특히 상대자 등의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33장 12절에서『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네게드)』동행하리라 라고 되어있는데, 네게드는 앞에 서서 가는 자인 것이다. 케네그도(כְּנֶגְדֹּֽו׃베필을)에서
케는 ~처럼이라는 전치사이다. 케네그(앞에 있는) 그래서 캐네그도 에젤은 “앞에 있는 것처럼
돕는” 의미다.
네게드가 나가드에서 유래되었는데, 나가드의 핵심적인 의미는
계시하다, 알려주다 라는 의미다. 창세기 41장 25절에서『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나가드)』
신명기 4장 13절에서도『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나가드)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그래서 네게드는 앞잪이가 되어서 계시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돕는 베필이 아담보다 한발 앞서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에쩨르(도움)는
구원하다, 돕다라는 의미다. 출애굽기 18장 4절에서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6장 20절에서
나사로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나사로의 히브리어는 엘라자르이다. 출애굽기 28장 1절에서『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엘르아살(하나님이 도우신다)은 아론의 아들이다. 에쩨르 네가드는 구원을 위해서 계시를 보여주고
돕는 자라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베필(네게드)은
남성 3인칭 단수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베필(에쩨르) 도 남성 3인칭이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베필을 하와로 생각한다. 하와라면 여성이 되어야
하는데, 왜 남성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베필은 남자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아담은 남자와 여자로 분리하기 전의 아담이다. 19절에 등장하는 동물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베필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베필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시고 동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동물을 통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베필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아담은 제사장으로 표현된다. 제사장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동물을 통해서 찾아보라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9절에서『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사도바울이 영적으로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게 부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2장 19절『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고린도전서 15장 39절과 비교하면 물고기가 없다. 물고기는 바다(세상)를 상징하고 물고기는 이방을 상징한다. 바다에 대비되는 곳이 육지이며, 출애굽하여 홍해를 지나 광야에 나온
자들이 모세가 인도하는 백성들이다. 아담은 제사장역할을 하며, 동물(짐승과 새)들은 그를 따르는 백성이 될 것이다. 백성들도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보인다. 들짐승은 성막으로 말하자면
성소뜰의 물두멍을 통과한 자이고, 공중에 있는 새는 성소뜰을 왔다갔다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물고기는 성막 밖에 있는 존재들이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다. 하나님이 아담을 동산에 두다(쉠)라고 했는데, 그 두다라는 말이 임명하다(제사장) 라는 의미다. 이름(숨)은 두다 라는 쉠에서 유래되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임무를 주고 특징짓는 행위가 된다. 쉠은 샤마임과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다. 샤마임은 하나님 말씀을 상징한다. 쉠은 노아의 아들
중 셈이라는 아들의 이름과 같다. 셈은 여자의 후손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언약의 자손이다.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이끌어간다는
히브리어는 와이야베(וַיָּבֵא֙
기본형은 보) 이다. 보는 창세기 7장 7절에서『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보)』창세기 16장 4절에서도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보)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에서
사용되었다. 아담이 동물을 부르는 것이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2장 20절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아담이 다양한 형태의
사람을 성막에 들여보냈는데, 하나가 될(동침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베필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마짜(מָצָ֥א)가 있는데, 번역에서 발견하다 라는 말이 빠져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짝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성전으로 세워질 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이사야 52장 11절에서『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정결한 자는 부정한 자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린도후서
6장 14-15절에서『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돕는
자가 없다면 그들은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혼자라는 것은 외롭게 사는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좋지않다』에서『좋다』(토브)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을 말한다. 좋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돕는
배필』이라고 표현된 것은 아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무엇이라는 의미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 배필을 말하고 이어서 창세기 2장 19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동물들도
이름을 얻기 위해 아담의 도움이 필요했고,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도 들어가야 할 육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것을 돕는 배필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돕는 배필이 필요한 대상은 2장 18-19절에서
두 종류다. 이 땅의 흙으로 지은 들짐승과 새들이고, 또
하나는 아담으로부터 한 육체를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서 이 땅에 오게될 영들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되는 것이다. 생물들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바로
도와주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2장 21-25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갈빗대(쩨라)는
문짝이라는 의미가 있다. 출애굽기 36장 32절에서 『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며』널판이 문짝(쪽)이다. 열왕기상 6장 34절에서『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문짝 하나가 두개로 되어 있으므로, 두 문짝은 네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개는 접혀있다. 접혀있는 두개 중의 하나가
바로 히브리어 첼라다. 이 첼라는 옆구리 측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잣나무로 된 문짝에 대한 설명은 법궤 위의 속죄소에 대한 설명이다. 그래서
언약궤의 측면을 지칭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5장 12-14절에서『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언약궤를 보면 금 고리가 네 모퉁이에 있는데, 이쪽에 두개, 저쪽에 두개를 단다고 했다. 이편, 저편이 히브리어『쩨라』라는 것이다.
출에굽기 26장 20절에서『성막 다른 쪽 곧 그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로 하고』그러므로 한쪽은 남쪽을 말한다. 다른 한편은 북쪽이기 때문이다. 지성소에 두 그룹(cherub)천사가 속죄소를 덮고 있으며, 두 그룹이 이편, 저편에서 덮고 있다. 『한편』이 바로 히브리어 『쩨라』다 따라서
갈비대로 번역된 것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아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무엇이라는 의미다. 다른
무엇은 접혀있는 문짝과 같이 문짝 한 부분에 대한 문짝 다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아담이 이 세상에
왔을 때 하나(문짝 한 부분)로 왔다. 그래서 문짝 다른 부분이 연결되므로 온전한 문짝이 된 것이다. 문짝은
쌍으로 되어있으므로 문짝이라고 하는 것이다. 돕는 베필은 여자라는 것이다. 옆구리의 갈비대를 빼어서 그 갈비대로 여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담(쌍의 문짝)에게서 여자(문짝
한 부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래 오실 자의 표상인 아담은
쌍의 문짝인데, 여자를 만들므로 쌍이 분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다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번역과정에서 갈비대를 뺏으므로 살로 생각한 것이다.『살』이라는 단어는 호흡이 있는 모든 육체를 말한다. 아담으로부터
분리된 문짝을 다시 채워주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채워주시는 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면 계약서에 서명해야만
한다. 그게 오늘날 약관이고, 성경에서는 새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언약한 새언약 백성들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 새언약은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다. 곧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가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여 죽었음을 믿고, 나도 예수와 함께 죽는
자가 되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씀이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갈빗대는 쌍으로 된 문짝을 말하고, 『살』이라는 단어는 호흡이 있는 모든
육체를 말한다. 창세기 6장 3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여기서 말하는 육신이 바로 살이라는 것이다. 6장 12절에서『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혈육이 바로
살에 해당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여기서『내 뼈 중의
뼈요』 뼈라는 단어는 몸, 신체, 본체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애굽기 12장
17절에서『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여기서『이 날에』에서『~에』라는 전치사가『뼈』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군대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천사들이지만, 이
땅에서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그래서『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이 말의 의미는 이 날 뼈(하늘의 영)와 너희 군대(이스라엘)를 세상(사탄)과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었다 라는 표현이다.
본래 하늘에 있는 본체(영)인 하늘에 있는 군대와 같은 하나님의 군대(이스라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다. 애굽기 12장 41절에서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여호와의 군대라고 표현하고, 출애굽기 12장 51절에서는『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 세상 속에서 천하만민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셨듯이, 하나님으로 부터 떠나온 영들을
건지신다는 것이다.
살이 나왔으므로 살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에게서 영들이 나왔으므로, 그 영들이 그리스도의 표상(첫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마지막 사람)안에서 영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영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먼저 찾아오시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목자에서 목자가 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양들이 제 갈길로 가버렸다. 그러나 목자가 찾아나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먼저 하나님께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다.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바나)』바나는 건축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의 표상인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여자(범죄한 영)가 벗어남을 의미한다. 육체로 태어난 생명체들은 한정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한정된 생명체를 통해서 영원한 것이 있음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이다. 영원한 생명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에게서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범죄한 영들을 이 세상에 인간이 되게 하시고, 세상에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왜 이 세상에 있게 되었는지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는 말은『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군대가 곧 하나님 나라의 군대』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 1절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는 말은『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다 이루다』라는 말은『완성하다, 마치다』 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절에서『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하나님께서 지으시던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물질세계에 하나님의 군대를 재편성 완료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하늘에 있을 때에도 나의 지체이고, 이 땅에서도 나(아담)의 지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내(마지막 아담)가 너희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아담(그리스도 표상)에게서 지체(범죄한
영들)를 끄집어내었다. 그 지체가 여자라 불리었다. 남자는 아담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의미다. 남편(남자)라는 말은 반드시 다른 한쪽(아내)이 있어야 하는 존재다. 결국 남편은 아내와 함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담은 지체가 떨어져 나간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와 만나야만 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한 지체가 둘로 나뉘어졌음을 말하는 것이지, 남녀가 있었는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천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정리를 하면, 첫사람 아담은 대속의 그리스도로서, 죄의 몸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죽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죄의 몸을 대대로 전해지고 범죄한 영과 죄가 죄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첫사람 아담과 남자 아담은 다른 존재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남자와 여자에게 만들어 준 그리스도, 남자(아담)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를 의미한다. 여자도 범죄한 천사를
상징한다.
첫사람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것은 하와가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을 의미한다. 죄로 인한 하나님과 분리이다. 첫사람 아담이 잠든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예표이다.
남자와 여자는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죄의 몸을 이어받아 태어났고, 범죄한 천사가 지은 죄가 하늘로 부터 그들의 죄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한 천사의 영이 죄의 몸 속으로 들어오므로 후대의 사람(남자와 여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천사의 영은 죄의 몸에 들어오므로 영적으로 죽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죄와 죄의
몸(육적 몸)이 있다. 죄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고, 죄는 하늘 나라에서 범죄한 영과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율법주의 나무로 자기가 주체가 되는 나무다. 사람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나무인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율법)의
열매를 먹는다” 말에서, 율법의 열매는 죄다. 죄의
결과는 (희생제물의) 죽음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인데, 율법의
열매를 먹는 것은 죄를 먹는 것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 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두번 죽음을 상징한다. 물세례와 불세례를 표현한 것이다.
3.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자
창세기 3장 1-4절『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장 3-4절의 번역상의 오류가 심하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וּמִפְּרִ֣י הָעֵץ֮ אֲשֶׁ֣ר בְּתֹוךְ־הַגָּן֒ אָמַ֣ר אֱלֹהִ֗ים לֹ֤א תֹֽאכְלוּ֙ מִמֶּ֔נּוּ וְלֹ֥א תִגְּע֖וּ בֹּ֑ו פֶּן־תְּמֻתֽוּן׃
וַיֹּ֥אמֶר הַנָּחָ֖שׁ אֶל־הָֽאִשָּׁ֑ה לֹֽא־מֹ֖ות תְּמֻתֽוּן׃
우미페리(과일의) 하에츠(나무의) 아셀(관계대명사) 베토크(중앙에) 학간(정원의) 아마르(그가 말했다) 엘로힘 로(부정) 토켈루(먹을 것이다) 밈멘누(그것) 웨로(부정) 티게우(만지지) 보(그것) 펜(하지않도록) 테무툰(너희가 죽을까)
와요메르(그리고 말했다) 한나하스(뱀) 엘(~에게) 하이샤(여자) 로(부정) 모트(죽고) 테무툰(죽으리라)
다시 번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로(부정) 토켈루(먹을 것이다) 밈멘누(그것)]. 한글개역개정은
『로(부정)』를 명령형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문장의 부정형이다. 만일
토켈루(미래형)의 부정형이면, 먹지 않게 될 것이다. 뒤의 문장도 만지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된다. 그러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는 죽는
것에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죽지 않도록 먹게 될 것이고, 죽지 않도록 만지게 될 것이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죽지 않고 죽으리라.』이는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생명의 열매를 먹으므로, 영이 죽지 않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부활생명의 열매를 먹으면 죽지 않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부활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이때 아담과 하와는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분리된 후의 남자와 여자인 것이다.
창세기 3장 5-6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말은 그것(생명나무
열매)을 먹는 날에는 영적으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되는 잘못된 선”을 깨달은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는 말이다. 한글번역성경은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 줄”이라고 번역했는데, 선악이라는 말에서 악이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 와라(기본형은 라)는 형용사로서 선을
수식한다. 악의 선이라는 말이다. 잘못된 선을 의미한다.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선이라는 말이다.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하와가 영적으로 눈을 뜨니 생명나무를 본즉, 기쁨과
가치있는 양식이 되는 나무, 고귀한 나무, 지혜로 만들어
줄 나무로 보이는 것이다.
창세기 3장 7절『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보니, 영적인 눈이 밝아진 것이다.『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아담이 육체적 알몸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을 벗어난 것 때문에 두려운(부끄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일종의 죄의식 상태가 된 것이다. 선악지식 나무를 바라보니 자기
속의 죄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생명나무를
먹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치마라는 말이 없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었다는 말은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수치를 면하게 하려는 모습이다. 인간은 혼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옷은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탐욕이라는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을 벗고 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다.
육의 몸이 죽고 하늘로부터 새로운 옷(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의 옷을 입지 않으면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과실은 부활생명인 의의 옷이다.
의의 옷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61장 10절에서『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의의 옷은 인간이 스스로 입는 옷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옷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창세기 3장 8절『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하락크)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루아흐)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파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챠바)』
하락크는 밖으로 나가다라는 의미다. 루아흐는 성령을 의미한다. 파님은 얼굴이다. 챠바는 감싸다 라는 의미다.
다시 번역하면,『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원으로 나가시는 것을
듣자 하나님의 면전에서 성령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감싸는데』, 이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와 같다. 하나님이
집(성전)에 계시다가 정원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그때 아담과 하와는 정원에 있었다.
창세기 3장 9-10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라고 물었다. 창세기
3장 10절『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이 말의 의미는 “이르되 내가 정원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내가 죄악된(벗은 것) 것을 깨달았고 두려웠지만 덮혀주었읍니다”라고 말한다.
창세기 3장 11-12절『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내용도 창세기 3장 3-4절의 의미와 같다.『이르시되 내가 너에게 먹으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는데 먹지 않았다고 누가 말하느냐』라는 것이다. 이 열매는 생명나무
열매이다. 여자가 부활생명을 먼저 받고, 남자가 여자를 통하여
부활생명을 받는 모양이다. 여자는 부활생명을 낳는 산고의 고통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창세기 3장 13-14절『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
하나님이 하와를 야단하는게 아니라 경위를 묻는 것이다.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먹도록 하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뱀은 사탄을 의미한다. 뱀은 하와를
속였다기 보다 범죄한 천사들이 살아나려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뱀은 고소하는
검사에 해당한다. 검사는 죄인을 감옥에 가두지만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해서는 방법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이를 다시 재정리하여 패러디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율법 아래
있는 자들로 부터 저주를 받지만, 세상을 다스리고 흙으로 된 자들을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세상을
다스릴 지위를 주는 장면이다. 이는 누가복음 4장 6절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창세기 3장 15절『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상에 온 사람들이다. 세상은 감옥이며
흙 속에 갇힌 영은 범죄한 천사의 영이다. 따라서 그들은 검사인 사탄을 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인의 후손(그리스도)이
죄인들을 구하게 된다는 말이다. 사탄과 예수는 검사와 변호사(재판관)의 역할을 한다. 예수는 변호사와 재판관을 겸직하므로, 불공정한 재판관이 된다. 그래서 논쟁을 할 때, 사탄은 예수님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비록 사탄이 있음에도
일방적으로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창세기 3장 16절『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부활생명 열매를 먹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활생명 열매를 맺게 하는데 고통이 심하다. 죄인을 돌아오게 하는 자는 자식을 낳는 고통이다. 남편은 그리스도이시다.
창세기 3장 17절『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 내용도 히브리어 성경을 통해서 재조명하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열매를 먹었는데, 내 명령은 그 열매를 먹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너는 수고하여 부활의 열매를 먹으리라』 라고 말씀을 하신다.
창세기 3장 18-19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성도가 부활의 열매를 맺게 하려면 고통이 따른다. 그 대상은
밭의 씨없는 채소와 같은 자들이다. 그래서 먹고 씨를 만들어 흙에 퍼트릴 것이다.
창세기 3장 20-21절『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와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므로 영적으로 산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부활의 자녀를 생산한다. 가죽옷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창세기 3장 22-23절『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와라 토브 와다트)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이슬라) (펜: 번역이 안됨)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
와라 토브, 와다트는 잘못된 선에 대한 지식이다. 이슬라(샤라크)는 손을
빼다 라는 의미다. 『야도우 이슬라 펜』은 손을 빼지 않도록 이라는 의미다. 다시 번역해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잘못된 선을 알았으므로 이제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빼지 않도록 붙잡아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 말은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이다.
창세기 3장 24절『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는 첫사람 그리스도이다. 쫒아내시고 라는 샬라흐는 나가게 하다
라는 의미다. 지키다 라는 샤마르는 보호하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에덴에서 나가게 하고(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에서 나가게 하고) 에덴 정원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보호하게 하시니라.』 (천사들이 생명나무를 지킨다) 지킨다는 말은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의미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천사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해 오는 자를 위해 지킨다.
한글 개역개정으로 창세기 2-3장을 읽어보면, 세상에 태어난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그 원죄로 인해서 모든 세상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으며, 아담은 파렴치한 인간으로 되어 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영생복락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흙 속에 들어가 사람이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부활생명으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창세기 2-3장의 내용은 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활생명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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